카테고리 없음

고려시대의 초조대장경과 팔만대장경, 그리고 목판·금속활자 인쇄술의 발전

마니2 2025. 10. 1. 14:45

1. 들어가는 말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위대한 성과 중 하나는 불교 경전을 집대성한 대장경입니다. 대장경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모은 경전과 이를 해설한 논서, 그리고 수행 규범을 모아 편찬한 방대한 불교 문헌의 총칭입니다. 특히 고려시대에 간행된 초조대장경과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은 단순한 종교적 목적을 넘어, 민족의 정신적 단합과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상징적 결집이었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발전한 목판 인쇄술은 후대의 금속활자 발명으로 이어져, 한국이 세계 인쇄문화사에 길이 남을 공헌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려시대의 초조대장경과 팔만대장경, 그리고 목판·금속활자 인쇄술의 발전

 

2. 초조대장경의 편찬

(1) 제작 배경

초조대장경은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기 위해 불력(佛力)에 의지하고자 제작된 대장경입니다. 고려 현종 2년(1011년) 거란의 제2차 침입으로 개경이 함락 위기에 놓이자, 국난을 불교의 힘으로 극복하려는 발원에서 대장경 조성이 시작되었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대장경을 제작하여 국가의 재앙을 물리치고자 했던 것입니다.

 

 

 

 

 

 

 

(2) 제작 과정과 특징

초조대장경은 약 3천여 권으로 추정되며, 고려 초기의 목판 인쇄술이 총동원된 대규모 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대장경은 고려 고종 때의 몽골 침입(1232년)에 의해 대부분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판본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3) 역사적 의미

비록 대부분 소실되었으나 초조대장경은 고려의 인쇄술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이며, 이후 팔만대장경 편찬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3. 팔만대장경(재조대장경)의 제작

(1) 편찬 동기

몽골의 침략이 거세지던 고려 고종 23년(1236년), 초조대장경이 불타 없어진 상황에서 다시 한 번 불력에 기댄 국난 극복의 염원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강화도에서 새롭게 대장경을 조성하기 시작하였고, 이를 재조대장경이라 부릅니다. 오늘날에는 판수가 약 8만 장에 달한다 하여 흔히 팔만대장경이라 합니다.

(2) 편찬 과정

팔만대장경은 1236년부터 1251년까지 약 16년에 걸쳐 완성되었습니다. 총 81,258판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며, 판목은 뒤틀림이 적고 곰팡이에 강한 가문비나무·산벚나무를 사용했습니다. 판각에 참여한 장인들은 글자 하나에도 오류가 없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였고, 잘못 새기면 다시 판을 새로 제작했습니다.

 

 

 

 

 

 

 

(3) 보관과 전승

완성된 팔만대장경은 처음에는 강화도 선원사에 봉안되었으나, 고려 말기에 합천 해인사 장경각으로 옮겨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습니다. 해인사 장경판전은 통풍과 습도 조절이 뛰어나 대장경을 천 년 가까이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4) 가치

팔만대장경은 내용의 완전성과 판각 기술의 정밀함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대장경"으로 평가받습니다.

 

4. 고려시대 인쇄술의 발전

(1) 목판 인쇄술

대장경 편찬의 핵심은 목판 인쇄술이었습니다. 고려의 장인들은 목판에 글자를 정교하게 새기고, 잉크를 발라 종이에 찍어내는 방식으로 대량 간행이 가능했습니다. 팔만대장경의 목판들은 지금도 글자 획이 뚜렷하고 일정하며, 글자의 균형이 뛰어나 목판 인쇄술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2) 금속활자의 등장

고려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한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인쇄본은 『직지심체요절』(백운화상 초록 불조 직지심체요절)로,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되었습니다. 이는 구텐베르크의 활자 인쇄(1450년경)보다 약 70여 년 앞선 성과로, 한국 인쇄문화의 위상을 드러냅니다.

(3) 목판과 금속활자의 상호 보완

목판은 대량 인쇄에 유리했지만, 오류가 생기면 판 전체를 새로 제작해야 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반면 금속활자는 글자를 조립·분해할 수 있어 수정과 재사용에 용이했습니다. 고려는 목판 인쇄술로 대장경과 같은 대규모 사업을 진행하는 한편, 금속활자를 통해 보다 효율적인 간행 방법을 시도했던 것입니다.

 

5. 초조대장경과 팔만대장경의 차이

초조대장경과 팔만대장경은 모두 고려시대에 편찬된 대장경이지만, 제작 시기와 배경, 그리고 현존 여부와 특징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초조대장경은 고려 현종 대에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1011년경부터 1087년까지 약 70여 년 동안 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대부분 불타 없어지고 오늘날에는 극히 일부만 남아 있습니다. 분량은 약 3천여 권 정도로 추정됩니다. 이는 고려 초기 목판 인쇄술을 집약한 결과물이었으나, 온전한 전승에는 실패했습니다.

 

반면에 팔만대장경은 고려 고종 대인 1236년부터 1251년까지 약 16년에 걸쳐 다시 조성된 대장경입니다. 이번에는 몽골의 끊임없는 침략을 불력으로 막고자 한 국가적 염원이 담겼습니다. 총 81,258판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현재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에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판각의 정밀함과 균형미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며,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대장경”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초조대장경은 고려 초기에 제작되어 소실된 유산이고, 팔만대장경은 그 뒤를 이어 완성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된 걸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6. 팔만대장경과 한국인의 정신

팔만대장경은 단순한 불교 경전이 아니라, 민족적 단합의 상징이었습니다. 전란 속에서도 온 국민이 힘을 모아 완성한 문화적 결실이자, “어떠한 난관도 극복할 수 있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신은 한국 문화사와 불교사뿐만 아니라, 세계 인류사적으로도 귀중한 유산으로 평가됩니다.

 

7. 맺음말

고려시대의 초조대장경과 팔만대장경, 그리고 목판과 금속활자 인쇄술은 단순한 기술적 성과를 넘어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적 유산입니다. 초조대장경은 비록 소실되었지만 팔만대장경으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세계 최초 금속활자 인쇄로 발전하여 인류 문명사에 기여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팔만대장경과 『직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고려인의 높은 문화 수준과 치열한 생존 의지, 그리고 후세를 향한 지혜의 전승 의지입니다. 이 거대한 유산은 과거의 산물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문화적 자부심과 정신적 힘을 불어넣고 있습니다.